CRITIC

BE HONEST, BE BRAVE

1

취향, 심귀연

취향은 선택일까, 아니면 자본이 짠 틀 안에서 선택이라 믿는걸까.

김다혜 2025.08.16
50

비포 미드나잇, 리처드 링클레이터

1995년에 출발한 유럽 횡단 열차의 종착역에서. 가족과 사회집단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합류적 사랑이 겪는 재귀적인 위기. 18년의 세월동안 가족 공동체는 가일층 나아가는데, 못마땅하고 못내 답답해하는 애정어린 마음들은 여전히 어리숙하다. 불처럼 타올랐던 사랑의 열정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자정의 온도에 이르렀다.

당신은 무엇을 그리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나. 그건 아마 달빛에 비친 반짝이는 잔물결. 주변의 모든 월광을 증류하여 흡수하는 자정의 윤슬이 가득 맺힌 세계. 내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세계.

서로를 향하던 눈빛과 미소가 한 점을 동시에 바라볼 때 자정은 우리에게 어린다. 엉기어 덮여서 조용히 빛난다.

어떤 사랑은 그렇게 남는다.

김서진 2025.08.17
10

그린나이트, 데이빗 로워리

탕아는 뒤집힌 세계에서만 용기를, 힘을, 자격을 얻는다. 미래를 엿본 기사는 죽고, 목 잘린 영웅은 잠에 든다. 위대한 시간은 계속된다. 불타고 있는 집을 뒤로 하고.

김서진 2025.08.17
10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요아킴 트리에

사랑, 원인과 결과가 분열된 불가해한 마음 쓰기.

사랑하고 사랑받는 행위 사이에 존재하던 시차가 초래한 달콤하지만 불안한 환락.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을 손에 쥐려는 헛된 꿈을 가지고, 열사의 낙원에서 운명의 나침반을 따라 길을 걷기로 마음 먹는다. 길을 잃는다. 흩어진다. 일어난다. 다시 걷는다. 세계는 흐르는 물에 나, 너, 우리를 던진다.

이러한 동사의 움직임은 어느 필사의 탐독가의 말처럼 참을 수 없이 결사적이므로

우리는 사랑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최악이 된다.

김서진 2025.08.17
50

미망, 김태양

남자(하성국)가 걷는다. 길을 헤맨다. 남자는 여자(이명하)를 만난다. 그들은 잊은 것, 잊지 못한 것, 잊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만 보자. 근데 잊지 못한 것과 잊지 않은 것에는 무슨 차이가 있나? '잊지 못함'은 비겁하고 '잊지 않음'은 오만한가? 애꿎은 전화기를 노려보며 네 번의 여름을 흘려보낸다. 하지만 부질없다. 여자는 전화번호를 정리했고 남자는 새로운 인연을 찾았다. 그렇게 그들은 신호등 앞에 서서 이른 작별 인사를 나눈다. 그렇게 몇 초의 시간이 흘렀다. '온 마음을 다해 그림'과 '구태여 떠올리려 함' 사이에는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지 않는 미로 같은 시간들이 있다.

친구의 장례식에서 다시 만난 그들이 향한 곳의 이름이 소우(小雨)임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장례식 날에 비가 오면 죽은 자의 영혼은 저승으로 가는 길을 잃어 이승에 머물러야 하므로. 여자, 그리고 남자와 마찬가지로 친구의 영혼은 아직 목적지에 이르지 않았다. 길을 잃은 영혼은 어디로 향하려나. 아마 길은 잠시 잃어도 괜찮으니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러 소우에 들렀겠지. 남자와 여자에게 반갑게 인사했을까. 어쩌면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가지런히 정리해놨으려나.

전화를 받으러 잠시 밖으로 나온 여자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렇게 [미망]은 우리의 생략된 시간에 깃들어 있는 감당할 수 없는 기분들을 떠오르게 한다. 떠오르는 감정은 '잊지 못함'의 찌꺼기인가. 아니면 오랫동안 고이 '잊지 않음'의 잔여물인가. 서로를 밀어붙이고 몰아세웠던 사소한 이유를 곱씹는다. 지키지 못한 몇 개의 약속들을 떠올린다. 변해버린 것을 찾으려는 시도는 역으로 변하지 않은 일들을 떠올린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은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된다.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계절은 속절없이 흘러갔나. 그리하여 우리는 멀리 넓게 바라봄(彌望)을 이해했나.

김서진 2025.08.19
ART IN MOTION, ARTIMO
artimo.in.motion@gmail.com